김광종
  시 -그렇게 살았던 것이 옳았던가 생각이 듭니다
  

1.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반드시 서울대에 합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했고, 심지어 고 1 때는 중학교 학생 과외도 가르치면서 집안 형편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합격한 후 합격증을 어머니께 드렸더니, 등록금 어떻게 하느냐는 말씀에, 아 서울대 들어가는 것이 다가 아니구나 생각하고 불효가 되었으니, 차라리 중학교 때 직업학교로 가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대학에 가서는 공부보다는 알바를 해서 집에 부담드리지 않는 길을 택했습니다. 과외 금지 시기라 여러 막노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3학년 때는 8가지 일을 하다가 결국 학사 경고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군에 가서 알게 된 것인데 전두환은 그 자녀를 과외를 시켰다는 것이고, 군에서는 과외가 이뤄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2. 김태훈 선배의 죽음 앞에서 부끄럽고 더 공부할 수가 없어서 자퇴하고 노동자가 되려고 했는데 학교에서 집으로 알려서 이 길이 막히고 죄책감에 거의 공부를 포기하고 다녔는데, 친구들도 그런 줄 알았더니, 2학년 올라갈 때 영문과 가는 친구들의 성적이 좋은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3. 매일 데모로 학교가 힘든 상황에서 그리고 친구들이 데모하다가 잡혀가는데 어찌 고시 공부를 하겠는가, 최소 투옥까지는 같이 되지 못하더라도 일신의 성공을 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것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에 합격하고 또 학위를 계속해서 교수가 되는 선후배, 친구들이 많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4. 대학 선교 단체에서는 연애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보니 알게 모르게 그 안에서 자기 짝들을 찾아 결혼하는 리더들이 있는 것을 보고 나중에 놀랐습니다.

5. 등록금 면제라고 해서 ROTC에 합격했지만, 과회장과 병행하지 말라 해서, 그것을 포기하고 졸업 후 사병으로 입대했더니 병사들에 대한 온갖 하대를 겪으면서 참 많이 후회했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이 옳았던 것일까요?

전주에서 입영 열차를 타니 출발하자 마자 인솔자 하사관이 욕지거리에 군화발이 날라와 모두 좌석 밑에 머리박으라고 할 때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가는 청년들에게 이것이 무슨 짓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교로 갔다면 이런 대접은 받지 않았을 것 아닌가?

춘천 102보충대에 도착해서, 인원 분류를 하는데, 인솔 병장이 계속 욕을 하길래, 손을 들고 일어서서 욕하지 말고 좋은 이야기로 해도 우리가 잘 듣겠다고 했더니 너 튀어나오라고 해서 나가니 주먹으로 치려다가, "너 그런 식으로 군 생활 해봐라. 이 xx"

그리고 11사단 훈련소에 갔더니 이보다 더 심하게 욕하고 일부는 맞는 일을 보면서, 어느 날 대대장님 훈시를 듣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말씀에, 이렇게 욕하고 때리지 않아도 인간적으로 대우해주시면 더 열심히 훈련을 받겠다고 했더니. 갑자기 싸한 분위기로 바뀌고, 침묵 후에 이 분이 하시는 말씀. "자네 군기가 덜 들었고만". 그리고 그 분은 지프를 타고 가시고, 다음에 소대장이 나오시면서 아까 그 말한 xx 튀어 나와. 그리고 저는 군화 발에 나동그라지고, 나이 어린 일부 동기들은 저를 군에 적응 못하는 사람인양 경멸하는 태도로 대하고.

그런데 역전이 벌어진 것이, 그날 이후로 저를 차셨던 그 소대장 분이 저를 따로 불러내서 간부들 사무실에서 전술 책을 읽고 요약해보라고 하시는 상황. 동기들은 제가 불려가서 더 얻어 터지고 오는 줄 알았지요.

6. 군에 다녀온 후 다시 대학원에 가려 하는데, 동생들이 아직 학부도 마치지 못했는데 자신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말에 포기하고 들어간 대기업에서, 전무님께 환경 문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말씀을 듣고 회사를 그만 두었던 것이 맞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일로 다시 외교학과에 편입해서 정치의 길로 오게 되었으니 운명이 무엇인지요?

7. 강남에 집을 사는 것은 투기하는 것이다는 생각이 들어서 큰 아이가 거기서 학교 다닐 때도 집을 사지 않고 있다가 2011년에 청약 저축이 되어서 강남 세곡동 아파트에 들어갔는데, 이후 미혼모 돕는 일을 하려고 집을 하나 더 샀다가 가까운 사람들이 질시하는 말에 이것이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결국 집이 늘어가는 것이 질투의 대상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던 집들을 모두 팔고 다시 무주택자로 돌아간 것이 2016년 11월입니다.

그런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다주택자에게 집을 팔으라고 했음에도 청와대 수석들까지 그러지 않고, 국토교통장관 후보자도 그렇지 않았음을 알게 된 후 나의 선택이 옳았는가 하는 의문의 마음이 듭니다.

8. 수방사 비서실에서 휴가 가기 전날 맞아주었던 일로 이빨도 다치고 삶에 큰 고통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냥 맞아주었던 것이 옳은가 생각합니다. 차라리 그 때 맞서서 싸웠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9. 하나님이 계시다고 생각하고, 저 자신도 죄인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그간 지은 죄를 반성하면서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넘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괴로와합니다. 그런데 죽어보니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마지막만은 잘못된 선택이 아니길 빕니다. 독립투사 분들이 집과 가업을 떠나 큰 고통 가운데 사시면서도 정의를 위해 싸우시다가 온갖 고초를 겪고, 그 여파로 또 그 후손들까지 어려운 삶을 사는데 국가가 보상해주지도 존경하지도 않는다면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이름이 남은 투사들은 그래도 명예롭지만, 이름없이 전선에서 돌아가신 수많은 무명 투사들의 억울함은 어떻게 풀어드릴 수 있겠습니까?

이 땅을 정의로운 세상으로 바꾸고 불의한 이웃 나라를 제거하는 것이 이 분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보상이고, 살아남은 우리가 호의호식하지 않고 목민심서의 수령처럼 검소하게 살아가는 길이 그나마 양심적인 행위다고 생각합니다.
[인쇄하기] 2019-03-28 12: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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