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김광종
  기독교는 여성 쿠테타의 역사
  

탈레반의 여성 인권에 대한 이야기, 이슬람의 여성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성경이 중요하다. 탈레반 위에는 성경이 있다. 탈레반은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마엘의 후손들이다. 탈레반은 대학에 여성이 학생으로나 강사로나 올 수 없게 만들려 하고 있다.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인가!

여성은 누구인가를 잘 이해하기 위해선 성경을 읽어야 한다.

성경은 여성 쿠테타의 기록이 넘쳐난다.

첫째 여성 하와의 범죄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지만, 반대로 성령 충만한 여성들의 기존 질서에 대한 쿠데타를 통해 죄와 사탄에 대한 승리가 결정적으로 이뤄지게 되었다.

하와의 일로 인하여 많은 문화권에서 여성이 차별되었고, 사도 바울조차도 교회에서 여성 차별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성경이 모두 이렇게 다 그런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조차도 로마서 마지막장 16장에서 여러 여성들을 칭찬하고 있고, 그 여성들의 헌신으로 인해 교회가 얼마나 든든히 서갔는가는 잘 드러내주고 있다.

교회에서 여성이 잠잠하라고 하신 것은 결국 모든 상황에 해당되는 것임이 아님을 드러낸다.

먼저 아브라함에 대한 사라의 항거를 들어야 한다. 아들을 낳기 위해 자기 하녀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었고, 하갈은 임신을 했고, 그리고 무시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라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부인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했고, 관철시켰다. 

이런 모습은 다시 리브가에게서도 나타난다. 이삭은 하나님 경외를 상실한, 믿음의 가문을 세우기엔 부족한 에서에게 장자권의 축복을 하려 하였다. 그러나 리브가가 보기엔 에서는 그 아내들로 인하여 이미 믿음의 가문을 세울 수 없는 아들이었다. 그러자 리브가는 과감히 쿠데타를 일으킨다. 둘째 아들 야곱을 장자로 세우기 위한 왕권 승계 쿠데타를 일으킨다. 심지어 자기 남편 이삭을 야곱과 함께 공모하여 속인다. 그 모든 저주는 자신이 받겠다고 하면서 이 일을 성사시킨다. 그런데 여기에서 놀라운 것은  이삭을 속이지만, 이삭의 축복에 대해서는 절대화하는 점이다.

이런 쿠데타는 다시 유다의 며느리 다말에게서도 잘 드러난다. 하나님의 가문을 세우기 위해, 유다의 첫 며느리인 자신을 통해 그 첫 아들의 계보를 세우기 위해 자신을 던져서 시아버지와 성관계를 한다. 이는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 쟁취의 문제였다. 시아버지의 육체가 탐이 나서 성관계를 한 것이 아니라,  시아버지와 며느리라는 사회 질서보다, 자신을 통해 그 가문의 계보를 관철하려는  충성이 있었다. 그래서 유다는 자신의 며느리가 자신보다 의롭다고 하였으며, 다시는 그 며느리와 잠자리를 하지는 않았다.
                                                   
히브리서에는 믿음의 계보의 여인들에 대해 나온다. 기생 라합이  자기 민족의 정권의 명령을 저버리고 외세와 결탁하여 자기 민족을 망하게 만들어버리고 자신은 그 정복 민족의 장군과 결혼하여 믿음의 가문에 들어오는 일이 민족 반역죄인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의 믿음의 계보에 선 선행이며 믿음의 행위인가! 히브리서는 기생 라합을 믿음의 계보의 여인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 히브리서에서는 여러 여인들이 죽은 자를 부활로 받았다고도 설명하고 있다. 이 히브리서를 사도 바울이 쓰셨다고 보고 있다.    

모세를 잉태한 요게벳도 이집트 정부에 대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집트 정부보다 더 상위의 정부는 하나님 나라다.

세상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쿠데타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정당한 행위였다. 이런 행위의 정점은 마리아의 쿠데타이다. 어찌 약혼한 남자의 아이가 아닌 아이를 잉태할 수 있는가!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불륜이 아니다.

최초의 잉태자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다. 아담이 하와를 낳았다. 단성 생식이었다. 그들로 인해 태어난 인류는 타락했다. 이에 아담을 낳으신 하나님께서는 다시 단성 생식을 통해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이 마리아라는 여성의 아들로, 단성 생식으로 태어나신 것이다. 아담의 실패를 회복하기 위해 다시 이런 방식을 택하셔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어찌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의 성관계를 통해 태어나실 수 있으실 것인가! 그저 처녀의 몸에서 스스로 태어나시는 것이 맞다. 아담의 범죄에서 자유로우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런 쿠데타, 언뜻 보면 세상 질서에 반하는 행위같지만 세상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거룩한 믿음의 행보가 우리를 구원에 이르도록 희생하셨다. 예수님께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신 말씀은 그래서 진리이다.

세상 나라가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이지, 하나님 나라가 세상 나라에 속한 것이 아니다.       

세상 나라가 하나님 나라를 장악하려 하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방해할 때는 과감히 쿠데타를 일으켜서 세상 나라를 멸해야 한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시다. 다윗 왕과 관련해서도 이런 쿠데타의 여인이 등장한다. 바로 아비가일이다. 자기 남편 나발의 악행을 간과하지 않고 직접 나서서 그 문제를 풀어낸다. 사무엘상 25장에는 그녀가 자기 남편 나발에게 말하지 않고 다윗에게 여러 화친의 선물을 가지고 가서 자기 집의 위기를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게 적극적인 여인들로 인해서 하나님 나라는 든든히 서간다. 그런데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고, 남자를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특정 상황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향해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고 말씀하시고, 그 성경이 교훈과 바르게 교육함에 유익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여기서 성경은 당연히 구약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구약에 나오는 이런 수많은 믿음의 여인들의 의거를 폄하하겠는가!

만약 여인들이 잠잠해야 했다면, 그리고 남편에게만 물었어야 했다면 야곱도, 다윗도 제대로 설 수 없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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