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김광종
  달성 불가 과정의 공정, 달성 가능 결과의 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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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산 개미들.jpg (861986 Bytes)

지난 토요일에 대모산 정상에 올랐다. 거기에서 개미들을 보았다. 이공계인지, 인문계인지 구별이 안되는 개미 집단이 등산객들의 발길을 개의치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인간 세계보다 훨씬더 공정한 과정과 공정한 결과물을 나누면서. 그래서 성경에서조차 지혜로운 존재로 개미가 등장하나보다.

이공계 출신이 중국 지도부를 이끌고 있어서 이토록 발전한 것이라고 이준석 대표가 말했다. 자신도 이공계 출신이기에 그런 말을 했으리라.

우리 중 누구도 과정의 공정을 이야기할 사람이 있을까!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과연 공정한 과정을 통해 창출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결론은 "없다" 이다.

이공계 출신이 그렇게 지혜롭다면 어떻게 진화론이 옳은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인가! 신은 계시지 않다고 과학자가 이야기한다면 그것이 옳은 것인가!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신은 계시지 않다는 유물론에 입각한 이공계 출신들인 것이 합리적인 것인가!

유일신을 섬기는 청교도 목사들에 의해 설립된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서,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이공계 지도부의 성공을 들먹이는 것에서 볼 때 이준석 대표의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공계와 인문계를 나눈 것부터 서양적 발상이다. 정약용 선생은 인문학의 대가이시다. 그런데 그가 얼마나 많은 이공계적 역량을 가지셨는가!

하나님은 이공계와 인문계의 통합형 신이시며 전능하시다. 그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우리들도 양쪽 모두에 능한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이것을 엉터리 진화론자들이 만든 학제와 일제 학제가 연합하여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여 버렸고 그 기이함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교육이고, 그 부산물이 바로 이준석 이공계 출신 대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이렇게 지혜없는 이야기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과정은 그 누구도 결코 공정할 수 없다. 하나님만 공정하시다. 그런데 두로 왕이 그 과정이 공정한 것처럼 이야기했다가 하나님께 큰 징계를 받는 말씀이 에스겔서 28장에 상세히 나온다.

두로 왕은 자신의 지혜와 명철로 부와 재물을 이뤄냈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그 성공은 하나님의 허락하심이었다는 것을 망각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다가 벌레에 먹혀 죽었다.

내 것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이 우리에겐 아예 없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사실상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마치 지금의 번영이 자신들이 이룬 것인양 하나님을 배척하고 있다. 그렇게 하다가 죽어간 왕들이 한 둘이 아니다. 교만이 그들의 패망의 선봉이 된다. 그것이 역사다.

하나님 앞에 교만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공정은 과정에서 결코 완성될 수 없다. 그래서 희년이 있는 것이다. 축구를 하는데 과정에서 완전하게 공정하게 이룰 수는 없다. 누군가가 11명 중에 골을 넣어야 한다. 그렇기에 패스를 해주어야 한다. 홀로서 이 골을 넣었으니 그 댓가는 모두 자기가 가져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선수는 없다.

그 수백 억 연봉 조차도 시민들과 팬들의 환호 속에 만들어진 광고 수익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결과물의 공정을 통해서 과정의 불공정을 해소해야 한다.

그래서 다윗은 전쟁에 나간 자와 나가지 않은 자의 몫을 반으로 나누는 룰을 세우셨다. 그런데 어리석은 이건희 회장은 이익 공유제를 듣도 보도 못한 것이라 했다. 성경을 읽어보았으면 알았을 것을! 지금 이건희 회장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

희년은 과정의 불공정을 해소하는 결정적 지혜다. 50년 만에 다시 한번 재분배함으로써 그간의 과정의 불공정을 일소하는 획기적 지혜다.

그 중간에 3년 십일조, 7년 면제년, 무이자 등을 통해 부분적 해소를 실시하다가, 결정적으로 50년만에, 그 수명이 거의 다해가고 그 자녀 세대들이 도달했을 즈음에 이렇게 결과물의 공정한 배분으로 정의를 세우는 시스템이다. 이 정의는 모든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다는 것,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은 역할, 실은 대부분의 역할을 하나님께서 하시고, 제공하셨다는 진리에 기반하기에 가능한 분배이다.

잉여가치를 둘러싼 노동과 자본의 투쟁이든, 여자와 남자의 투쟁이든, 세대 간의 투쟁이든 이 진리가 망각되면 인류는 큰 고통에 휩싸이게 된다.

그것이 1,2차 대전이고, 지금의 선후진국 분쟁이며, 한 사회 내의 빈부간, 세대간 갈등, 젠더 갈등의 주 요인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는 것은 종교적 수사가 아니라, 진리이다. 이준석 대표는 다시 성경을 묵상하길 바란다. 아무리 바빠도 성경을 묵상하면서 무엇이 진리인지, 공정은 어떻게 달성될 수 있는지 살펴보길 바란다.

이러한 공정한 묵상 없이, 세계의 주인에 대한 공정한 경외 없이 인간사의 공정은 달성 불가한 미션 임파서블이 된다. 진정한 보수는 원래 이 세계 질서가 어떠한 것이어야 했는지에 대한 물음과 묵상을 통해 도달할 수 있다.

성경은 보수의 근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다시 성경은 알파이기도 하지만, 오메가이기도 함으로써 진보, 즉 우리가 다시 도달해야 할 진보의 모델이기도 하다.

즉 성경은 보수와 진보를 모두 포괄한 알파와 오메가이며, 시작과 끝이다. 그리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하는 자율주행시스템의 안전 체계이다.

하버드 대학의 에커트 교수나 램지어 교수의 일제와 관련한 어리석은 결론이, 하버드대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롭다 하는 자들의 지혜를 폐해버리시는 분이시다.

왜 국민의 힘이 이준석 같은 청년을 대표로 뽑을 수 밖에 없었는지, 이 사태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못 해석함으로써 이 나라는 북한의 젊은 김정은이나 재벌 3세 청년들의 등장이 의미하는 것과 연계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오래 검증된 중국 지도부 선출방식만도 못한 시스템으로 말미암아 더 큰 어려움이 중국보다는 남북한에 벌어지고 있는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 지금의 엉터리 민주화 세력의 재앙이 더큰 엉터리 보수의 재앙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린 평양 좌파가 좌지우지하는 북한과 어린 강남 우파가 죄지우지하는 남한이 되어가고 있다. 그 끝은 유물론 중국에 흡수당하는 비극으로 끝날 것이다. 만약 근본을 고민하는 지혜로운 세력의 등장이 실패로 끝난다면.

이공계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자본론만이 아니라 자치통감을 읽고 중국의 고전들을 함께 읽는다. 북한의 지도부들은 무슨 책을 읽고 있는가!

남한의 1번당, 2번당 지도부들은 무슨 책을 읽는가! n번방 지도부들이 장악한 어두움의 세력과 1번당 2번당은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국민을 강탈해서 자신들의 필요를 채운다는 점에서 이들은 본질적으로 같은 어둠의 세력들이다.

우리는 빛으로 반드시 이 어둠의 세력을 제거해야 한다. 우리 안의 어둠을 회개하고 제거하고서.

장단주기 분배, 생활수단 및 생산수단의 단주기, 중주기, 장주기적 재분배, 즉 결과물에 대한 공정한 분배, 그 사회가 이뤄낸 결과물에 대한 공정한 다양한 주기별 재분배 없이는, 과정의 공정, 공정한 경쟁은 아예 미션 임파서블이 된다.

이러한 희망, 즉 결과물이 공평하게 분배되리라는 사회적 기대가 없는 사회는 반드시 과정의 불공정이 극대화되고, 부패가 심해진다. 조국의 자녀의 입시 문제는 이런 사회적 인식의 강남 좌파적 가정적 해결책에 불과했고, 이 가정적, 개별 단위의 해결책이 바로 강남 부동산 투기와 전국민의 부동산 집중이며, 헬조선의 원인이다.

그래서 희년은 희망이고 기쁨이고, 한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 원동력이다. 과정도 보다 공정해지고, 편법과 반칙이 과정에서 많이 사라진다. 결국 결과물의 분배가 공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주기가 단 중 장이 됨으로써 일정 기간의 불평등은 용인된다. 그것마저 없다면 선의의 경쟁도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초단기분배 사회인 사회주의가 이렇게 망했다.

사도행전의 유무상통 초대교회는 간만의 희년이었다. 그 후에 다시 50년의 자율적 경쟁이 시도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 확실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음을 관찰할 수 있다. 이공계적 특성과 인문계적 특성이 아이들의 놀이 과정에서 다 보여진다. 모래로 무엇을 건설하고 개미를 관찰하고, 하늘의 별들을 신기해하고, 시를 짓는다. 놀이도 창의적으로 만들어낸다. 규칙도 정한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북한 공산당보다 합리적이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세습을 하는 북한과 달리, 그 지도부내에서 그나마 집단적 결정을 통해 다음 인물을 골라낸다. 계파간 갈등이 있기는 해도 그나마 북한보다는 낫다. 북한은 왜 이렇게 하지 못할까! 김정은이 아니라, 다른 혁명 세력의 아들이 될 수는 없는 것인가!

그런데 이 모습이 정확히 남한에서도 벌어진다. 재벌 세습, 교회 세습, 그리고 정치 세습. 아들이 없는 박근혜 대통령의 키즈로 선발된 이준석 대표의 등장은 남한식 자본주의 형태다. 북한식 사회주의와 남한식 자본주의의 유사성이 대단히 높다. 조국의 자녀 사랑도 이런 것들의 변형에 불과하다.

하영선 교수가 1994년도에 나에게 왜 자네는 남한이라고 말하냐고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죽은 겨자씨 한 알 논문을 발표할 때였다. 남한과 북한,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북한 사회주의 방식인 것인가! 내가 운동권 좌파일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 부제가 한국자본주의의 주체적 조건 발전론 이었으니 주체 사상 신봉자로 생각했나 보다. 그런데 이 주체라는 단어는 우리 민족이 가진 아주 귀한 것인데 북한이 독점하고 있다. 그래선 안된다. 

아리랑도 북한과 중국이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아리랑당은 아직도 창추위 글자를 붙이고 있다.

유럽식이었으면 이미 창당이 완료된 상태다. 공정한 과정을 만들지 않는 1번, 2번, n번이 번갈아 집권하는 어둠의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아직도 창당이 완료되고 있지 않으나 우리는 진정한 정당이다. 비록 아리랑당을 달고 선거에 나가지는 못한다 해도. 그래서 지난 선거에는 무소속 추천까지 받아야 하기에 민생당 기호를 달고 나갔다.

공정한 경쟁을 외치는 이준석 대표는 우리의 정당법, 선거법을 최소 독일 수준으로 공정하게 만드는 데 앞장 서길 바란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대표직을 주신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공정하지 못하게 박근혜 키즈가 된 것에 대한 삭개오식의 회개일 것이다.

과정의 불공정을 지적한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마리아식의 선택의 정의와 가치를 말씀해주셨다. 그 결과물은 마르다와 마리아가 공평하게 나눌 수 있다. 역할은 다르지만, 창출물에 대해선 같이 나눈다. 이것이 바로 과정의 불공정 소지를 완전히 해소하는 결과물의 공정 분배를 통해 정의 세움이다.

누가 대통령이 된들 어떻다는 것인가! 그가 만인을 섬기고, 자기 목숨을 만인을 위해 내어놓는 예수님같은 대통령이라면!





[인쇄하기] 2021-06-23 11: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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