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김광종
  그들이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놀랍게 여겨 침묵하니라
  

위 제목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은지 예수님께 여쭤보자, 예수님께서 하신 대답,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이 말씀, 이 대답의 뜻을 간계를 폈던 자들조차 잘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세월이 지나면서 기독교 세계가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말씀이 되었고, 가장 잘 적용하지 못하는 구절이 되었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관통하고 있는 진리를 예수님은 말씀하셨고, 간계를 편 자들조차 이해를 했던 것인데, 오늘날 특히 대한민국에서 지난 100여년간, 일제의 치하로부터 시작해서 이 말씀을 처음엔 이해했으나 점차 일제 시대에 이 말씀의 의미를 전혀 불의하게 해석하기 시작했고, 이젠 그것이 확정되어서 아주 엉터리이며, 불의한 해석, 하나님께 조차 부당한 해석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제는 신사참배를 강요했고, 교회는 카톨릭과 개신교가 모두 이를 받아들였고, 일제 후기로 갈수록 보다 적극적으로 이에 참여했습니다.

일왕을 신으로 섬기는 일제 앞에서,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린 카톨릭과 개신교의 죄악이었습니다.

이것이 해방 이후에도 독재 정권과 군부 정권 앞에서 또다시 반복되는데, 남한의 카톨릭과 개신교의 지도자들은 일제 신사 참배의 주역들이었고, 그 주역들이 자신들의 후계자로 세운 그 제자들이 다시 교계를 주도하고, 신학교를 장악했기에 그들도 이 불의한 해석의 신학을 계속 유지했고, 이를 교인들에게 강력하게 전파했습니다.

속으론 일제와 철저히 협력했던 뮈텔 주교처럼, 겉으론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고 설교하면서 속으론 일제와 독재 정권에 철저히 연계된 자들이었습니다.

임진왜란에 십자가 깃발을 들고 이 땅을 유린했던 고니시 유키나가, 즉 소서행장의 카톨릭 왜군에 종군 신부 세스페데스가 따라다녔고, 이들은 정유재란에는 남원성 전투에서 수많은 조선의 백성을 도륙했고, 코를 베어갔습니다.

백인들의 카톨릭이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를 유린하면서 그 주민들을 선교라는 명목으로 식민지화하면서 악행을 저지른 것이 어찌 하나님의 뜻이었겠으며, 어찌 정의였겠습니까!

면죄부를 팔아 그 탐욕을 채우던 자들이 이젠 유럽의 카톨릭 왕들과 결탁하고 상인들과 결탁하고, 루터의 개신교와 경쟁하면서 식민지들을 늘려갔던 만행이 세계사에 세세히 기록되었습니다.

칼이 아니라 말씀으로 전해져야 했던 선교가 이토록 타락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온 천하를 다녀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했던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을 판박이처럼 닮았던 것입니다.

그 탐욕과 칼날이 토요토미 히데요시 시대의 왜국에 임했고, 그들과 합세하여 조선 정복에 나서고, 명나라 정복에 나서면서 이 땅에 참화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도 역시 그 백성을 착취하는 악랄한 사이비 유교 정권이었기에 하늘의 심판이 이렇게 임했습니다. 하지만 앗수르와 바벨론을 통해 이스라엘을 치신 하나님이시지만, 몽둥이 앗수르와 바벨론이 교만해져서 과도하게 불의하게 이스라엘을 쳤고, 이를 통해 다시 그들이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왜나라가 이 땅을 과도하게 쳤고, 이 일의 선봉장된 고니시 유키나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후예들이 다시 메이지 유신과 함께 다시 서양의 선교사들과 합세하여 이 땅을 다시 유린하게 됩니다. 이것이 일제 시대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조선 말은 그야말로 그 정권과 양반들의 타락과 서민 착취는 춘향전이며, 다산의 저서에 잘 나타났습니다.

이 타락에 대한 징벌로 일제가 지배했는데, 이 때 카톨릭과 개신교는 철저히 일제 중심이 되었고, 극소수만이 성경의 진리를 따라서 예수님의 길을 가면서 가이사보다 하나님을 더 섬기면서 헤롯과 빌라도에 의해 죽임을 당했듯이 그렇게 고난을 겪었습니다.

미국은 2차대전 후에, 노예를 아프라카에서 데려오고 사고 팔고 했던 그들의 조상들을 따라 여전히 정의보다는 이익을 중심하는 자본주의의 노예로 살면서 이 땅을 지배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이 불의한 역사 속에서 이 땅에 불완전하나마 성경 번역본들을 보내주셨고, 이 땅에서는 끊임없이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이 분들이 바로, 정약용, 정약전, 이벽, 안중근 장군, 도산 안창호, 백범 김구 등이셨습니다.

이 진정한 기독인들이 한 알의 죽은 겨자씨들이 되어 이 땅의 생명을 이어가는 초석을 놓은 선지자들이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희생을 귀하게 쓰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갈림길에 놓여 있습니다. 가이사와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을 통해, 대한민국 내에서 뿐만 아니라, 한반도, 그것도 여전히 하나님의 자리를 꿰차고 앉은 김정은과 시진핑, 일왕이 있는 주변 정세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한 미국과 국제 질서 속에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라는 말씀을 제대로 해석하고, 가이사가 하나님의 것임을 깨닫고, 느부갓네살 왕의 깨달음을 통해 이 땅에 정의를 세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치를 이루어야 하고, 그런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너무도 많은 일제 잔재가, 그리고 타락한 중세 교회의 잔재가, 그리고 미국적 사이비 기독교의 잔재가 이 땅에 남아 있지만, 그리고 우리 몸에 배인 차별과 짧은 역사 인식이 있지만, 천민 자본주의가 세계를 휩쓸고 있고, 거짓 사회주의가 그 세력을 놓지 않고 있지만, 우리는 이 온전한 승리, 공의 정치, 하나님 경외 정치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이것이 한민족이 그간 이 땅에서 모진 세월을 거치면서 살아남은 역사적 소명이고, 인류사적 사명이며, 하나님께서 동쪽 끝의 나라를 위해 남겨두신 복입니다. 저들이 악하게 선교하고 들어왔지만, 마치 요셉을 종으로 판 그 형들처럼 우리를 유린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루터기를 남겨두시고, 변절하지 않은 사람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이 소중한 인류 구원의 역사, 이스라엘도 실패하고 서양 기독교도 실패한 역사를 이룰 귀한 복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희년을 이루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자산을 다시 나눠주며 함께 하늘님을 섬기는 세상은 반드시 이뤄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간계를 아시고 데나리온의 형상과 글을 통해 누구의 것인지를 물어보십니다.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 하나님을 섬긴다고 줄구장창 말하는 그들에게,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멀릿돌이 되었다고 말씀하시면서 무릇 이 돌 위에떨어지는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고 하셨습니다.(누가복음 20장 17-18)

이 말씀은 포도원 농부 비유, 즉 주인의 종들과 그 아들마저 죽인 자들에 대한 말씀 다음에 하신 말씀이며 이 말씀들이 자신들에 대한 것임을 알고 예수를 잡고자 하였지만 백성을 두려워하다가 예수를 촏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으려고 했던 말들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선생님, 즉 랍비라고 부르면서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고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신다고 한껏 칭송을 늘어놓은 후에 덫을 놓아 이스라엘이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물었던 것입니다.

일제 잔재, 거짓 미국 기독교의 잔재, 타락한 중세 카톨릭의 잔재가 생각보다 깊이 이 땅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단순히 건물이나 제도에만 남은 것이 아니라, 이것들이 이 땅의 생각을 바꿨고, 그 왜곡된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들을 대학과 재판정과 국회와 행정부와 기업들과 교회, 성당과 교회들, 그리고 만해 한용훈이 지적하신 절들 속에 깊이 뿌리박게 했습니다.

남강 이승훈 같은 정직한 기업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촌 김성수 같은 타락한 기업가가 대한민국의 천민 자본주의의 토대를 만들어갔고,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산재를 유발했습니다.

이제 새로운 나라를 향한 새 발걸음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버린다고 하신 말씀이 이 땅에, 그리고 일본 열도와 북한과 중국과 미국에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홀로 힘겹게 이 싸움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반드시 정의로 귀결되고 승리할 것입니다.

아벨, 노아, 아브라함, 삼손, 다윗, 예레미야, 다니엘, 느헤미야, 에스더, 마리아, 예수님, 베드로, 사도 바울, 마틴 루터, 링컨, 정약전, 안중근, 김구 이 분들의 뒤를 이어 세계사에 선한 족적을 남기는 우리가 디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일곱번 넘어지고, 허다한 허물이 있을지라도, 죄인의 괴수라 할지라도 돌이켜 다시 이 소명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원하고 기도드립니다.

그 왜곡의 총화가 남은 곳이 부동산 시장이고, 이에 대해 강남의 대형교회 목사들이 부동산 투기에 대해 경고하지 않고, 고금리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으며, 불의한 재판들에 대해, 불의한 선거법과 정당법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으며,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산헤드린 공회원들과 합세한 것과 흡사합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일소에 해소해야 하겠습니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가 승리한다면, 엘에이치가 독점하고 있는 임대아파트들을 그 임차인들에게 토지임대부로 전환 분양해드리고, 해방 후 처음으로 자산 재분배를 제대로 이뤄내며, 선거법을 바꿔서 거대 정당들이 장악한 정치 권력을 가루로 만들어 전국민에게 돌려 드리겠습니다.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권력을 철저히 분산시키고, 순환형 합의형 체제, 다당제, 지방 분권 강화를 실현해내겠습니다. 부당한 세금을 철저히 줄이고, 착취형 예산을 줄이겠습니다.

대한민국에 더이상 무주택 가구도, 고금리 피해자도 없게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량을 계발할 수 있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 누구도 누구를 착취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여기서 생긴 힘을 바탕으로 주변 나라들에도 이런 정책을 전파하여 동아시아와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도 정의로운 체제가 만들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교회를 갱신하고, 진리가 선파되는 곳들로 변화시키겠습니다. 대학이 가난한 학생들을 착취하지 않고 선한 영향력을 확산시키는 곳으로 변화시키겠습니다.

군대를 정의로운 곳으로 바꾸겠습니다. 중소기업들이 창의적으로 성장해가고, 중소 정당들이 새싹처럼 자라가게 하겠습니다. 서울과 지방이 빈부로 격차가 생기는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길이지만, 믿음의 선조들의 정신을 따라, 과감히 승리를 확신하며 이 길을 갑니다. 비록 실패한다 할지라도 그 실패조차 선한 한 알의 썩은 밀 알이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서. 선지자적 희망주의를 가지고서. 선지자적 비관주의가 아니라.






[인쇄하기] 2021-06-09 09:08:31

이름 : 비밀번호 :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관리자로그인~~ 전체 5492개 - 현재 1/367 쪽
번호
제목
이름
파일
날짜
조회
5492 김광종 2021-06-25 19
5491 김광종 2021-06-23 24
5490 김광종 첨부화일 : 대모산 개미들.jpg (861986 Bytes) 2021-06-23 39
5489 김광종 2021-06-23 26
5488 김광종 2021-06-23 25
5487 김광종 2021-06-22 26
5486 김광종 2021-06-22 23
5485 김광종 2021-06-22 25
5484 김광종 2021-06-22 34
5483 김광종 2021-06-20 88
5482 김광종 2021-06-20 43
5481 김광종 2021-06-18 131
5480 김광종 2021-06-17 95
5479 김광종 2021-06-16 136
5478 김광종 2021-06-16 120
  1 [2] [3] [4] [5]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