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종
  종의 기원 - 다윈
  

이 책을 직접 꼭 읽어보아야 한다.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울 때 미리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아마도 근대 세계에서 종의 기원처럼 국제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책도 적을 것이다. 생물학 관련 책이면서도 정치 경제 군사 분야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 영향력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세계화의 근저에 깔려 있는 철학도 종의 기원이 가지는 세계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고 본다.

다윈은 이 책을 통해 개별 종이 창조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여 지금 상태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그 변화 과정의 핵심은 최적자 생존론이다.

여러 변이 종들 가운데 경쟁과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고 종의 번식을 확산시킬 수 있었던 종만이 살아남았다고 본다.

그러면 그 증거가 되는 중간 변종이 지질학적으로 남아있지 않은 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에 대해 반증을 하면서 이는 지질학적 증거의 빈약성으로 인한 것이지 그것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다윈은 다양한 자료를 통해 자신의 논리를 증명해가고자 한다. 그래도 그의 책이 고전화된 것은 바로 이러한 다양한 자료를 통해 증명을 시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개별적으로 보면 상당히 일리가 있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가 가진 논리의 전체적 맥락을 보면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최적자 생존은 왜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자연 스스로 가진 것인가? 아니면 그 시스템 자체가 생명체에 주어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바로 이 점에서 다윈은 그 시스템 자체를 스스로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이것이 그의 오류가 된다. 동일 시스템이 다양한 종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외재적 설계의 증거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자연 전체를 살리기 위해 이 시스템을 도입하셨다고 본다. 즉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각 종들에 허락하신 것이다.

다윈은 책의 중간에 자신이 시초 창조에 대해 따져볼 수 있는 지식을 가진 것은 아니며 다만 종들이 변해간다는 것을 토대로 지금의 종들이 이렇게 창조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지식의 한계에 대해 여러번 말한다. 특히 논리가 궁색해질 때도 그런다.

그러면 최적자 생존론은 근대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다윈은 종내에서는 타자를 살리기 위한 협조는 없다고 말한다. 오직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경쟁만이 존재한다고 한다.

자본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서구 사회는 신을 떠나 자신들의 이성을 극대화하는 합리주의 사회로 접어들면서 오로지 경쟁만이 그들의 신이 된다. 특히 군사주의와 맞물려 이 운동은 증폭되어진다.

서구 유럽에서는 19세기의 세력 균형 정책은 깨어지고 20세기로 접어들면서 폭력적 지배가 확산되었고 결국 1,2차 세계 대전이 발생하게 된다.

협조와 공생보다는 경쟁만이 강조되는 지구 질서가 이 결과를 가져왔다. 아직도 그 파괴력은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이 철학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제3세계 지역 등은 특히 많은 고난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혜택을 본 국가는 미국이었다. 그들은 바로 열등한 인종 흑인들과 황인들을 노예로 부리면서 자유의 깃발 아래 타인들의 자유를 짓밟으며 자본의 확대를 실현했다.

그러면 다윈의 최적자 생존론은 틀린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자연계에서의 최적자와 인류에서의 최적자를 구별하지 못하고 이를 그대로 적용한 근대 이성의 오류였다.

동물이나 식물 세계에서 다윈의 최적자 생존론은 타당하다고 본다. 한 종의 한 개체의 영향력의 범위는 언제나 한정되어있다. 식물의 경우 바람에 날려간다 해도 그것이 떨어진 곳에서 또다시 타 종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무한정 확산에 제지를 받게 되어 있다. 그리고 언제나 한 종은 먹이 사슬을 통해 다른 종에 종속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지나치게 한 종이 많아질 때 먹이 사슬은 그 종의 개체수를 한정시키는 시스템이 자연계에는 존재한다.

즉 자연계는 스스로 자기 전체를 보존하는 일정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고 각 개체들은 이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킬 능력은 없으며 그 시스템 속에서 적응해가거나 도태해가며, 따라서 종들의 변이가 시스템 전체를 파괴하는 일은 전연 나타날 수가 없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 사회에 적용되면 달라진다.

인간은 시스템 자체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계의 종들은 그것이 아무리 강해진다 해도 도구 사용이 한정되어 그 팔이 미치는 범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설령 식물 중 바람에 날려간다 해도 그 지역에서 다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1m 도 되지 않는 팔을 넘어 지구 바깥으로도 그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파괴력은 전쟁을 통해 증명된다.

인간은 창조력을 지니고 환경에 적응해가지만 그 악한 심성은 파괴력을 가지고 전체를 공멸시킨다. 또 파괴를 입은 상대는 복수의 칼을 갈게 되고 다시 전체를 파괴하는 일을 벌이게 된다.

특히 핵무기나 생화학 무기의 개발은 이러한 현실을 앞당겼다.

원시 시대처럼 칼로 싸울 때는 많아야 한 사람의 훌륭한 전사가 한꺼번에 수백명밖에 죽일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추 하나를 누르는 것으로도 지구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다.

자연계의 최적자와 인류의 최적자는 구별되어야 한다.

자연계에서는 가장 우량하며 종을 확산시킬 수있는 것이 최적자이지만, 인류에 있어서는 그와 함께 인류와 자연 전체를 사랑하는 자가 최적자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복수를 불러오는 강압이 그의 수단이 되어 결국 자신도 그 칼에 맞아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동물이나 식물은 온유한 자가 아니라 강한 자가 땅을 차지하지만 인간은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는 최적자가 될 것임을 창조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것이다.

다윗의 짧은 팔이 도구 사용을 통해 골리앗의 긴 팔을 이겼는데 이는 동물계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다윗이 땅을 차지하게 된 것은 도구 사용 능력이 아니라 영적 능력, 즉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 때문이었다.

자연계에서는 개별 개체의 힘의 경쟁이 전체의 성공을 가져오는 공평한 룰이지만 인류계에선 사랑의 경쟁이 전체의 성공을 가져오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룰이 된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연계와 인류계의 유지 시스템에 구별을 두신 것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명철에 매달린 인류는 스스로 파멸의 길로 치달을 것이다.

[인쇄하기] 2021-02-20 16: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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