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종
  프란체스카 리 스토리
  

지난 주 이화장에 갔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사저입니다. 거기에서 책을 보았는데, 프란체스카 리 스토리라는 책으로, 이승만 박사의 영부인에 관한 전기 소설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로 시집 간 이순애씨가 자신과 반대 처지의 프란체스카 여사에 관하여 쓴 전기 소설입니다.(랜덤하우스코리아,2005)

프란체스카 여사는 오스트리아 출신 여성입니다. 한번 이혼했고, 이승만 박사가 임시정부 시절 빈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테이블에 같이 앉게 되었는데, 프란체스카 여사가 짝사랑을 하게 되고 결국 사랑으로 결실을 맺게 된 것으로 나옵니다.

그녀 나이 33세 때, 이승만 박사 58세 때 두 분이 만납니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승만 박사를 따라 미국으로 가서 독립 운동을 돕습니다. 비서로서 모든 활동을 돕고, 건강을 챙기고, 한국 음식을 배워서 해드리는 등 참 헌신적인 사랑으로 남편을 돕습니다.

그리고 결국 조국이 독립되고, 두 분은 한국으로 들어와 이승만 박사는 대통령이 됩니다. 그리고 한국 전쟁, 네 차례의 대통령 당선..

그리고 이기붕 장남 이강석씨의 양자 삼기, 부정 선거로 부통령 이기붕 일가에 대한 이강석씨의 사살과 자살,

다시 하와이로의 망명. 병든 이승만 박사를 요양원에서 끝까지 돌보는 프란체스카 여사.

이인수 씨를 전주 이씨 문중에서 양자로 들이는 일.

한국으로 돌아가려다 박정희 정권의 반대로 돌아오지 못하고, 결국 하와이에서 돌아가신 이승만 박사. 1965. 7.19.

가족장으로 치뤄진 이승만 박사의 장례

프란체스카 여사는 오스트리아로 잠깐 가 계시다가, 양자 이인수씨(공군사관학교 졸업)의 권유로 한국으로 돌아와 1992년 돌아가실 때까지 이화장에서 사십니다. 제가 대학시절 한번 찾아가 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1933년에 만나 1962년 이승만 박사가 돌아가시기까지 함께 했던 시간들, 그리고 그가 돌아가신 후 한국에서 사신 시간들.

한국 독립 운동가의 아내가 되어 일제와 싸운 여인. 끝까지 남편을 사랑하고 돕고, 그와 함께 묻힌 여인..

가슴이 짠했습니다.

제가 이화장에서 본 그녀가 입던 옷이 있었는데, 닳은 부분을 계속 고쳐 입어 팔 길이가 짧았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쓰던 옷장은 종이 박스를 잘라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승만 박사가 독립 운동 시절, 그리고 대통령 시절 검소해야 한다고 하셔서 같이 검소함으로 살다 가신 분이십니다.

이승만 박사가 말년에 잘못 판단하여 세 번까지만 대통령 일을 하시고 네번째만 하지 않았다면 존경받는 초대 대통령으로서 사실 수 있었는데, 안타까웠습니다.

이승만 박사는 1875년생, 프란체스카 여사는 1900년생. 호주댁이라 잘못 불린 이유는 하와이에서 독립 운동 시절, 오스트리아를 오스트렐리아로 잘못 알아들은 교민들이 그녀를 호주댁이라 부른 데서 연유했다 합니다.

저와 아리랑당은 한국의 독립 운동에 혁혁한 공로를 세우신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프란체스카 여사의 기도에 부응하여, 한국을 통일시키고 정의로운 나라로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인쇄하기] 2011-03-26 19: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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