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창
  시민의 불복종[헨리 데이빗 소로우, 이레]
  

역사의 전환기에는 언제나 그 축을 이룬 사람과 사상이 자립잡고 있다.

전제 군주제에서 근대 시민사회로의 전환은 바로 저항권이라는 중요한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입헌군주제 내지는 민주제에서 이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불의한 현실을 바꿔왔는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바로 시민의 불복종을 통해서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그를 '19세기를 살았지만 21세기적인 환경의식'을 지닌 사람으로 일컫곤 한다.

그는 글의 말미에서 이렇게 묻는다.

"어쩌면 나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신약성서>가 쓰여진 지 1800년이 지난 오늘날, 입법이라는 학문에 대해 이 책이 던져주는 빛을 활용할 만한 지혜와 실용적인 재능을 가진 입법자는 어디에 있는가?"

그는 정의를 위해서는 헌법의 권위까지 도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에 종속된 한계 상황에서 접근하기에 근본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던 소로우는 그 절대적 진리나 가치를 바로 성경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쉐퍼의 성경적 절대 가치에 근거한 시민 불복종 운동은 어쩌면 소로우의 영향에서 출발했는지 모르겠다.

소로우는 불의한 현실에 대한 방관자가 되지 말고, 적극적으로 불의한 현실과 싸우라고 말한다.

이는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성경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같다.

그러나 소로우가 주장하는 불복종의 한계는 단순히 불의한 현실에 대한 불복종일 뿐 근본적으로 대안적 정치투쟁에 의한 변혁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은 것이 한계가 아닐까?

이 책은 보석같은 문장들을 통해서 우리 시대에 개인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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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한 사람으로 실제적으로 말한다면, 나는 무정부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지금 당장 정부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당장, 보다 나은 정부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일이다. 단체에는 양심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양심적인 사람들이 모인 단체는 양심을 가진 단체이다. 법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인간으로 만든 적은 없다. 오히려 법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조차도 매일매일 불의의 하수인이 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기계로서 자신의 육신을 바쳐 국가를 섬기고 있다. 상비군, 예비군, 간수, 경찰관, 민병대 등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판단력이나 도덕 감각을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나무나 흙이나 돌과 같은 우치에 놓아버린다. 그래서 나무로 사람을 깎아 만들더라도 그들이 하는 일을 해내는 데는 별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짚으로 만든 사람이나 흙덩이 이상의 존경을 받을 자격이 없다. 그들의 값어치는 말이나 개보다 나을 것이 없다. 그런데도 이런 사람들이 보통은 선량한 시민으로 대접을 받고 있다. 그외에 대다수의 입법자, 정치가, 변호사, 목사 그리고 관리 등이 주로 자신의 머리를 가지고 국가에 봉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도덕적 변별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뿐만 아니라 악마도 함께 섬기게 된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참다운 의미의 영웅, 애국자, 순교자, 개혁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그들의 양심을 가지고 이바지한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필연적으로 국가에 저항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따라서 국가로부터 흔히 적으로 취급을 받는다."

"같은 인간을 위해 자기 자신을 모두 내주는 사람은 쓸모없는 이기주의자로 보이지만 자기 자신의 일부만을 주는 사람은 자선가나 박애주의자라고 불린다."

"정의 편에 투표하는 것도 정의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정의가 승리하기를 바란다는 당신의 의사를 사람들에게 가볍게 표시하는 것일 뿐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정의를 운수에 맡기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 정의가 다수의 힘을 통해 실현되기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이것만은 알고 있다. 즉, 메사추세츠 주 안에서 천 사람이, 아니 백 사람이, 아니 내가 이름을 댈 수 있는 열 사람(열 사람의 정직한 사람)이, 아니 단 한 명의 정직한 사람이라도 노예 소유하기를 그만두고 실지로 노예제도의 방조자의 입장에서 물러나며 그 때문에 형무소에 갇힌다면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시작이 아무리 작은 듯이 보여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 번 행해진 옳은 일은 영원히 행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껏해야 거기에 대해 토론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하면서, 개혁은 수십 개의 신문을 붙들어 일거리를 주고 있으나 단 한 명의 사람도 붙들지 못하고 있다."

"웹스터는 정부의 이면을 꿰뜷어보는 적이 없으며, 따라서 정부에 대해 권위있는 말을 할 자격이 없다. 그가 하는 말은 현존하는 정부의 본질적 개혁을 생각하지 않는 입법자들에게는 지극히 지혜로운 말로 들리겠지만,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나 백년 대계를 생각하는 입법자들에게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눈 한 번 돌려본 일이 없는 사람으로만 보인다."

"진리의 보다 순수한 원천을 모르는 사람들, 즉 그 시냇물을 따라 상류로 더듬어 올라가지 않는 사람들은, 현명하게도 성서와 헌법 옆에 서서 존경과 겸허의 자세로 그곳의 물을 마신다. 그러나 진리의 시냇물이 이 호수 또는 연못에 조금씩 흘러들어가는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허리띠를 다시 한 번 졸라매고 그 수원을 향해 순례를 계속한다."

"나는 마침내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대할 수 있고, 개인을 한 이웃으로 존경할 수 있는 국가를 상상하는 즐거움을 가져본다. 그런 국가는, 일부 소수의 사람들이 국가에 대해 초연하며 국가에 대해 참견하지도 않고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살더라도 이웃과 동포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한 그들이 국가의 안녕을 해치는 자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열매를 맺고 또 이 열매가 익는 대로 떨어지게 허락해 주는 국가는, 그보다 더 완전하고 영광스러운 국가, 내가 상상만 했지 결코 보지는 못한 그런 국가가 탄생하도록 길을 열어줄 것이다."
[인쇄하기] 2005-09-05 05:4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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