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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의 「김대중 죽이기」를 읽고
설연휴에 서울에 사는 큰형 집에, 설 귀성전쟁에 자식들 고생한다며 고향에서 역 귀향하여 올라오신 부모님과 저희 내외가 모였을 때, 큰형의 서재에서 여러 권의 책을 가져왔는데, 그 중에 강준만 교수의 「김대중 죽이기」와 이영작 교수의 「대통령 선거전략 보고서-97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 이 두 책이 있습니다. 이 책들을 읽게 된 것은 성토모의 정치세력화와 정치활동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1995년에 발간된 강준만 교수의 「김대중 죽이기」는 세간에 꽤 알려졌던 책이고, 이영작 교수의 「대통령 선거전략 보고서-97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는 2001년에 발간된 책으로 제게는 낯설었습니다. 이 두 책의 발간 사이에 97년 대선이 있었고 김대중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김대중 대통령님으로 존칭하지 않고 이 책의 어감을 살려 아래에서는 김대중으로 약칭합니다). 오늘은 먼저 강준만 교수의 책내용을 소개하고 다음에 이영작 교수의 책을 소개하겠습니다.
강준만 교수는 김대중을 '선생님'으로 부르며 열광적으로 지지하지도 않고 또 김대중을 '대통령병 환자'로 부르며 경멸하지도 않는 중립적인 입장에 자신이 서 있음을 밝히고는, 지역감정으로 김대중 죽이기를 자행해 온 군사독재와 당시 김영삼 정권을 망라한 정치집단들을 비롯하여, 그 중에서도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언론과,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지식인들을 그 실명을 거론하며 집중적으로 비판합니다. 이들에 의해 조장되고 수용된 김대중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들, 예컨대 김대중은 거짓말을 잘한다, 김대중은 과격하다, 김대중은 변신을 잘한다는 등의 이미지들을 김대중이 왜 가지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그 이미지들의 부당성을 논증합니다. 그리고 그는 특별히 언론과 지식인이 이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김대중의 정치철학과 능력과 자질을 국민들이 공정하게 평가할 수 없게 만들어 왔다고 비판하며, 이 책의 목적 중 하나는 김대중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준만 교수의 핵심 논점은 김대중 혐오증은 바로 전라도 혐오증에서 초래된 것이며, 이러한 지역차별을 <조선일보>와 같은 언론들과 보수적 논객들 뿐만 아니라 진보적인 지식인들마저도 수용하여, 차별받는 쪽과 차별하는 쪽을 모두 양비론으로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언론개혁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는데, 이것은 향후 '안티조선'으로 대표되는 언론개혁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한 지역차별과 정치혐오를 부추기며 결국 여당의 장기집권을 조장하는 언론에 영합하여, 지역감정 문제에 대한 양비론을 전파하는 지식인들의 큰 문제의 심층기저에 깔려 있는, 전라도 혐오증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지식인들에 대한 본격적 비판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강준만 교수에게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정치집단과 언론과 지식인이 조장하는 지역감정에 놀아나는 국민에 대한 엄중한 비판이었습니다. 이 점은 지역감정 문제를 언급하며 비판하는 다른 지식인들과 크게 다른 점입니다. 지역차별의 책임을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정치집단과 언론과 지식인에게만 돌리지 않고, 국민에게도 그 책임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 잘못된 지역차별 의식과 관행을 회피하거나 감내하지 말고 정면으로 문제제기하고 적극적으로 바꾸어 나갈 것을 김대중과 전라도에 주문합니다. 그리고 국민에게도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을 쏙 빼놓고 하는 정치평론의 쓰레기 더미에서 탈출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가 하는 가치관을 회복하고 자역감정이라는 집단정신병을 치료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마지막을 이렇게 맺습니다. "당신들이 전라도 사람들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 무엇이든 김대중과 전라도 사람들은 결코 지금과 같은 대접을 받을 만큼 나쁘지는 않다."
97년 대선에 김대중이 출마하고 당선되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92년 대선 패배 후 정계은퇴를 선언한 김대중이 정계에 복귀하는 문제에 대한 이 책의 본문을 읽는 것은, 그 만큼 당시의 팽팽한 긴장감이 없이 읽는 단점도 되었지만 동시에 몇 해 후의 미래 역사를 알고 당시의 박진감 넘치는 논쟁 상황을 조명하는 '전지자적 관점'을 체험하는 묘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 지금은 이 책이 문제삼는 지역차별이 폐기되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최근의 선거들과 향후 대선을 전망하는 여론조사의 결과들은, 결코 김대중 혐오증과 전라도 혐오증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거 때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정치꾼 지역분열주의자들의 망언도 사라지지 않았고, 그것을 보도하며 조장하는 언론의 문제도 여전하며, 무엇보다 그들의 지역감정 조장에 놀아나는 국민들의 의식 수준은 가히 절망적이라 할만큼 답답한 상황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언론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 힘을 점점 더 얻어가고 있고 지식인들이 언론에 영합하는 비겁한 자세를 버리고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발전의 핵심 과제 중 하나가 호남을 차별하는 지역감정 문제라고 할 때, 이 문제를, 결코 바꿀 수 없는 문제라고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거나 회피하지 않고, 지식인과 언론, 정치집단과 국민에게 직접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적극적으로 바꾸어 나가는 일은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의 성숙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