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김광종
  예수님은 종교 수장이시고, 다윗은 정치적 수장이신가
  

예수님은 왜 유대인의 왕이냐고 여쭤보는 빌라도에게 네 말이 옳도다(누가복음 23:3)고 하셨고, 요한복음에서는 빌라도 스스로가 그렇게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빌라도 너에게 하는 말이냐고 오히려 되물으십니다.(18:33-34)

복음서마다 약간 다르게 표현되고 있고, 또 그런 다른 표현들을 통해서 여러 단초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서 인정하고 있는 것에 비해서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하는 빌라도에게 자신들의 왕은 가이사라고 말하며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라고 빌라도를 협박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려는 헤롯에 대해서도 여우라 하셨고, 빌라도를 향해서도 자신을 빌라도에게 넘겨준 자들의 죄가 빌라도의 죄보다 더 크다고 하심으로써 빌라도의 무죄 가능성을 일축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본질은 정치적인 메시야인지 아니면 종교적인 메시야인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여기서 후자를 택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많은 목회자들도 그렇게 설교합니다.

그 근거로 요한복음 18장 36절을 인용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는 결국 하나님의 나라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이니 당연히 예수님은 종교적 메시야라고 결론 내립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9장 11절을 보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놓아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 즉 그러한 정치적 법적 권한도 있다고 말하는 빌라도에게 예수님은 그 권한이 위에서 주시지 않으셨으면 예수님을 해할 권한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악한 행위이며, 그 악한 행위조차도 빌라도의 상관되시며, 가이사의 상관되시는 위에서 허락하셔서 가능한 일이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빌라도에게 너의 상관은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불리할 때는 하나님을 종교적으로 몰아가서 스스로 십자가를 피하면서, 오직 교회 안에서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다고 선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치적, 법적으로 불의한 일을 당하시는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왕이시다고 선포하십니다.

다윗은 자기를 왕으로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다고 미갈에게 선포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리 낮아져도 옷이 벗겨지도록 춤출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미갈에게는 권위로서 대하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정치적 권위의 근거를 종교적으로 포장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정치적 권위를 선포했습니다. 미갈은 하나님의 종교성과 다윗의 정치성을 구별하려 했습니다.

오늘날 이런 위선적이고 가증한 미갈적 태도로 하나님을 이용하고 정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렇게 설교하는 자들도 많습니다. 미갈이 선지자 노릇을 진정한 선지자 다윗 앞에서 하고 있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다윗은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지자였다고 표현되기도 합니다. 다윗처럼 많은 글을 성경에 올린 선지자도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도 성경의 주요 저자 중 한 분이십니다.

이원론적 세계관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정치와 하나님을 분리하는 것이며, 정치적 지도자로부터 하나님 섬기는 일을 분리하는 일입니다.

육체의 떡과 영혼의 떡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종교적 수장과 정치적 수장 모두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정교 분리의 헌법적 원칙은 어떻게 볼 수 있는가? 종교 지도자가 정치 지도자의 일을 겸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지도자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그 본질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정치적 지도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북한 김정은에게서 보여지는 최고 존엄이라는 표현은 정치적 지도자들이 어떻게 자신을 신격화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수많은 정치적 지도자들이 스스로를 신의 경지에 올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을 신의 경지에 올린 것이 아니라 신을 섬기는 종으로 이해했습니다.

많은 종교지도자들도 자신을 신격화하려는 우를 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옷을 찢어버렸습니다.

사울은 직접 제사를 드리려다가 그 왕의 자리를 빼앗기게 됩니다. 정교 분리의 원칙은 정치 수장이 종교적 예배의 주관자의 역할을 동시에 해선 안된다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지, 정치지도자가 하나님을 섬겨선 안된다고 이해해선 안되는 것입니다.

황교안 대표가 절에 가서 합장을 하는 행위는 불교가 부처를 하나님과 동등한 신으로서 보고 있는지와 관련해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어떤 종교적 대상도 신의 자리에 갈 수 없습니다.

다윗이 위대할까요? 부처가 위대할까요? 당연히 다윗입니다. 부처는 성경 저자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부처보다 위대한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올 때 옷이 벗겨지도록 춤을 추었습니다.

부처는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속히 불교가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현재의 기독교라고 말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일이지만, 또 교인에 대하여는 판단할 권이 있다고 말씀하신 바울의 태도로 볼 때 합당합니다.

불교는 속히 성경을 묵상하는 일에 전념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잡아죽이러 다닌 사울이 변하여 예수님의 증인과 제자로 살아간 것처럼, 많은 불교 승려들도 속히 성경을 묵상하고 하나님을,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절에 가서 불상에 물을 붓고, 예를 표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다윗이라면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다니엘이라면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예수님에 대해 수없이 들은 한국 불교가 아직도 예수님을 주로 섬기지 않는 것에 대해 이미 돌아가신 부처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요?

종교적 분쟁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의 문제이고, 이는 빌라도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서 이해됩니다.

득도는 성경을 묵상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습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요한복음 18장 37-38)

저 김광종은 정치인입니다. 공의와 하나님 경외는 정치의 두 근간입니다.

정치의 본질은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 경외이며, 공의입니다.(사무엘하 23장)

열왕기서와 역대서는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삶의 현장들을 찾아다니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시고 말씀을 가르치심으로서 진리를 설파하시고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정치의 본질은 진리입니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느부갓네살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자 소가 되었고, 벨사살은 암살당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시며, 성경이 그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불교 승려들이 성경을 묵상하고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의 가장 큰 업무는 종일토록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지키는 일입니다.(여호수아 1장)
2019-06-18 10:3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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