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김광종
  편애가 없으신 하나님과 자본주의와 믿음
  

가나안 땅의 거민들이 극도로 타락하자 이스라엘을 통해 그들을 치도록 하셨고 또 이스라엘이 극도로 타락하자 앗수르를 통해서 그들을 치도록 하셨고 앗수르가 타락하자 바벨론을 통해 그들을 치도록 하셨고 바벨론이 타락하자 페르시아(메데와 바사)를 통해 그들을 치도록 하셨습니다.

그 이후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세가지 원칙에 입각하여 세계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공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평, 사람과 자연 사이의 공평.

첫번째 공평이 깨지면 다른 공평들도 깨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선하게 행동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연을 귀하게 여길 수 없습니다.

지금 세계는 환경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여기고 있고 노동의 문제, 인권의 문제, 국제 평화의 문제, 세계화, 무한 경쟁 등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나가서 그 말씀을 듣지 않는 한 이러한 문제들의 근원은 해결될 수 없고 한 문제가 풀리면 다른 문제는 더 커져 있는 현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세상 문제를 풀어내는 지식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것은 헛되이 경배하는 지금의 기독교식 종교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립서비스를 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후예가 아니라, 야고보식의 인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만 참 지식은 오게 될 것입니다.

악인이 모은 재물은 의인을 위해 쓰여진다고 했습니다.

지금 악인들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가 모으는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예비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된다면 우리는 이 모든 재물을 가지고 이 세상에 의로운 일들을 펼쳐 나갈 것입니다.

완전한 통치자,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지기까지 세상은 이렇게 혼란에 혼란을 반복할 것입니다.

그 반복을 통해 인류는 스스로 어떤 것도 해낼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배제하고, 스스로의 지식에 의해선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음을 알게 되는 지식 습득의 과정을 지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최선을 다해 3대 공평을 그 비중에 따라 완성하는 것이 우리 당의 궁극적 지향입니다.

볍씨 한 알이 생성되기까지 인간이 미칠 수 있는 영향은 5% 정도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습니다.

나머지 95%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이를 무신론자들은 자연의 힘이라고 말하지만 자연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세계가 존재할 뿐이며 이 피조물은 여전히 하나님에 의해 관리되고 있습니다.

나머지 5%마저도 더 엄밀히 따지면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인간들이 스스로 겸손해져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지혜를 구하고 문제 해결을 시도할 때 지금의 많은 문제들은 풀려나갈 것입니다.

유럽에서, 서구 자본주의의 온실인 그곳에서, 그래도 미국식 자본주의보다는 약간의 사회주의적 희석이 있었던 그곳에서 지난 몇 십년 간 남성의 정자수가 반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생산성의 향상의 결과가 무엇으로 이어지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류의 최대의 적은 인류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악인들은 스스로 올무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잠깐은 승리하는 듯하지만 결국은 죽음의 길, 공멸의 길로 나갈 뿐입니다.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기 전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길만이 인류가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로입니다.

지구를 통해 하나님은 온 인류가 굶는 사람도, 실직자도 없을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지구 위에 사는 강자들은 이 모든 재원을 통해 모두를 먹여 살리는 것을 염려하는 것보다 경쟁에서 승자가 되는 것에 더욱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땅에서, 그 기계 옆에서 구조 조정을 단행하여 1인당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고 그 경쟁에서 승리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계, 1인당 생산성의 증대만을 꿈꾸는 세계를 용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온 땅에 홀로 거하려 하는 자들,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받은 것으로 모든 사람들을 먹여 살리려는 일에 관심이 없고 모든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자들, 빌 게이츠나 잭 웰치 류들의 인간들에게 하나님은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후에 늦게 온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임금을 지불해주셨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생산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들의 필요가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나라입니다.

자기의 이익의 관점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자본가가 아니라, 노동자의 필요에 따라 사업을 운영하는 자본가를 원하셨습니다. 즉 이윤에 그 목적이 있는 자본가가 아니라 고용에 목적이 있는 자본가, 나눔에 목적이 있는 자본가를 원하셨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는 자본가가 아닙니다. 자본은 이윤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본가는 그 이윤을 노동의 착취, 잉여 가치의 절취에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서 얻습니다. 그래서 그는 경제 법칙에서 벗어나 있지만 결코 망하는 일이 없습니다.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되거니와 흩어 구제하여도 부하게 되는 기적이 그에게서 일어납니다.

마치 선지자에게 그 마지막 음식을 나누어준 과부와 같습니다. 그 양만으로 본다면 이 여인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나누어줌으로써 그 항아리는 계속 채워졌습니다.

인류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것을 받았습니다.

공중의 새는 노동해서 생산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생산물을 그냥 먹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너무도 내일 일을 염려합니다.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모르실 리가 없으십니다.

지금의 세계화, 자본주의는 결국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자본주의입니다.

이 자본주의는 기독교 국가들 속에서 생겨났습니다. 그 출발에서부터 이것은 가난한 자들과 노동자들에 대한 나눔의 절약을 통해 성장했고 가난한 자들의 피, 노동자들의 피를 먹으며 자랐습니다.

그것은 점차 서구를 떠나 아프리카의 노예, 아메리카의 원주민들, 아시아의 주민들의 피를 먹으며 더욱 성장했습니다.

그 댓가는 소수로의 부의 집중이며, 다수의 정자수의 감소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보아서는 안되며, 하나님이 가지신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눌 수 있습니다. 이는 선지자의 사환의 계산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일입니다.

문제는 기적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그 사환은 현실을 보지 못했으며 선지자는 현실을 보았습니다.

지금의 강자들의 죄악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현실을 보지 못하고 홀로 거하려 하기 때문에 그들은 가난한 자들의 마지막 남은 피와 살을 그들의 십자가에서 마시고 뜯어먹고 있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은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의 후손들의 피와 살을 먹고 있습니다.

그 댓가를 그들은 혹독하게 치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당은 믿음의 당입니다. 믿음 없이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어놓을 수 없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물 위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믿음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역사입니다.

홍해를 건너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 없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요단 강을 넘어 가나안을 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악덕한 인류의 길을 돌리는 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광야 길로 데리고 갔을 때 그들은 우리를 돌로 치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여 살리실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알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이런 역사를 감행하십니다.

오늘날도 사람이 생산성의 증대, 구조 조정만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보여주시고자, 이 광야, 세계화, 무한 경쟁의 광야에서 믿음으로 전진하기를 원하십니다.

애굽의 고깃 가마를 그리워하는 노예 근성의 민족을 바꾸어 그 존재의 진정한 근원인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주적 민족으로 변화시키는 역사를 우리는 이 땅 가운데서 실현하려는 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 일 자체가 믿음이 필요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의지는 박약함이 아니며, 현실입니다.

사람이 물이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이 물에 의지하는 것은 박약함이 아니며, 그의 태생적 현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우리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술을 의지하는 것은 박약함입니다. 사람이 물을 의지하는 것은 현실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돈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식이며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식이 맞았음을 증명해주실 것입니다.

믿음은 능력입니다. 반드시 그 열매로 알아 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옳았다면 우리는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 모든 영광은 주님께 돌아갈 것입니다.

그것은 비굴함이 아니며, 현실입니다. 우리의 현실 인식이며, 본질이며, 지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했을 때는 아직 그 나라가 제대로 서지도 못했을 때입니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반드시 멸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대표 국가들은 지구 상에서 이름도 없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을 무너뜨릴 나라는 아직 그 통합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약소국일 것입니다.

일본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무너질지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이번 지진은 하나의 예표일 수 있습니다. 금융 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무너질 핵관련 시설을 너무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들은 서로 치게 되어 있습니다. 불의자들의 연합은 한계가 있습니다. 불의 자체가 분열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최대의 적은 일본 내에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최대의 적은 사회주의가 아니며 자본주의입니다.

그들이 사회주의에 대해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자만할 때 그 적은 그 속에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이 길을 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유업을 받게 될 것입니다.



2011-04-05 1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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