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김광종
  믿음이란
  

로마서 1장 17절에는 이 귀절이 인용되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믿음과 관련한 논의를 잘못 이해하여 기독교 내에 여러 분파가 생겨났고 야고보서에는 이런 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으며 오늘날도 믿음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어떤 점에서는 기독교 전체에 만연되어 있는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 우리 당의 정치 신학에서 아주 중요한 논제가 됩니다.

현재 기독교 신학에서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구원의 개인주의화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박국 선지자와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과 바벨론과 세계 만민에게 주셨을 때 하나님은 개인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공동체적 차원, 국가적 차원, 인류적 차원에서의 불의와 관련하여 한 개인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 불의와 대치하며 나아갈 것인가와 관련하여 주셨다는 점에서 이 구절을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하나님과의 관계,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개인주의적 의는 있을 수 없습니다.

본문이 씌여진 배경을 보아야 이 말씀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스라엘의 범죄 만연과 그들에 대한 바벨론을 통한 징계 그리고 다시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이 구절이 선포되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 앞에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라는 구절(합 2:4)에서 "그"는 이스라엘을 칠 도구가 될 바벨론을 가리키며 악의 세력을 총칭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인"은 "그"와 대조되는 "의로운 세력"을 총칭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교만하며 소망이 올바르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묘사되었으므로, "의인"은 겸손하며 소망이 올바른 사람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는 자기를 의지하며, 자기가 가진 재물과 자기가 가진 힘을 의지하며, 그것이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하며 교만하며,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살며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사기를 일삼으며, 사람들을 착취하고, 사람들을 잔인하게 대하며 사람들의 것을 빼앗고 삽니다.

하지만 "의인"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 그 소망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에 있는 사람으로, 불의에 항거하며, 불의의를 행하는 자들에게 경고하며, 불의를 불의하다고 선포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즉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 하박국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이냐는 점입니다.

이를 흔히 이 땅과 다른 천국으로 보며, 관념적 세계로 인식하는데 믿음의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노력했는지를 보면 이 천국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 17절 뒤부터 써내려가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거기에서 이 세상의 각종 불의함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탄식했던 이스라엘의 모습이며 바벨론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런 모습과 정반대의 세계라고 보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뜬구름과 같은 곳이 아닙니다. 철저히 현실적이며 구체적입니다.

하박국 선지가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면 의인이 믿음으로 사는 것,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 것, 하나님의 의를 위해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불의와 민족의 불의, 국제 사회의 불의, 국가들의 불의에 무관심하며 자신만이 홀로 구원받기 위하여 소시민적 교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결코 의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서구 기독교 세계는 개인주의화되었습니다. 개인의 재산과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그래서 프로테스탄티즘은 자본주의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근본이라고 하신 사도 바울의 가치관과 정 반대의 길로 "믿음의 사람들"이 가버렸습니다.

세계의 불의와 싸우며 하나님의 의를 이 세계에서 확장하려는 일은 한낱 부질 없는 비신앙적 행위이며, 자신의 돈을 벌기 위해 하나님을 끌어들여 복을 누리려는 행위는 참 신앙의 행위로 포장되었습니다.

바벨론이 자본주의 세계의 믿음의 사람으로 포장되고 하박국 선지자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남을 돕기 위해, 남에게 신세지기 않기 위해 노동하라고 하셨지만, 서구 기독교는 남을 지배하기 위해, 더많이 누리기 위해 노예를 잡아왔고 노동자를 착취했고 자본을 관리했고 타국에 침략했습니다.

하박국서 1장 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악독한 바벨론이 사람을 사로잡아 모으기를 모래같이 많이 할 것이라 하셨는데 이 짓거리를 바로 서구 기독교 세계가 했으며, 지금의 세계 패권 국가, 성경 위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대통령을 뽑는 프로테스탄트의 나라 미국의 역사에서 자행된 일입니다.

하박국서 1장 16-17절에 나오는 말씀대로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들을 믿으며 자신들의 신을 따라 자신들의 뜻대로 불의를 행하여 소득이 풍부하며 식물이 풍성한 자들로서 그물을 떨고는 연하여 늘 열국을 살륙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이런 자들이 사는 방식대로 살아가지 않고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을 인내함으로 기다리며 이 땅에 의를 확장하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말세가 다가올수록 믿음의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불법이 성행하므로 끝까지 참으면서 하나님을 믿고 의를 행하는 사람이 거의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당은 오직 믿음으로 움직이는 당이 되어야 합니다.

하박국서 3장에 나오는 말씀대로 우리의 모든 것이 빼앗긴다 해도 우리는 믿음으로 의를 이루기 위하여, 믿음의 선지자들의 시련의 길을 좇아 가야 합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마 5장 12절)

하늘의 상급은 이 땅에서 불의한 자들로 인하여 모든 것을 빼앗길수록 많아집니다. 이 땅에서 불의를 통해 모든 풍요와 재물을 누리면서 하늘의 상급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일부러 자학적으로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측면에서 선을 위해 살다가 모든 것을 빼앗겨도 오직 믿음으로 견뎌내며 그 선의 길, 의의 길을 계속 간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결코 이 풍진 세상을 떠나 청산에 홀로 사는 길이 아니며 이 풍진 세상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싸우는 길입니다.


2011-04-05 1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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