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종 [ E-mail ]
  이스라엘의 가족이 축적할 수 있었던 최대 부는 어느 수준이었을까?
  

신명기에서 경제법이 주어질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각 가족들이 소유할 수 있는 최대 부는 어느 정도가 될 것이라고 가정하시고 이런 법을 만드셨을까?

토지는 50년 마다 재분할된다. 즉 모든 생산의 주요 토대가 되는 토지가 완전히 재분할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토지가 재분할된다는 것은 그 위에서 자랄 식물과 가축 등의 수의 한계를 의미한다.(오늘날과 같이 자연과학과 공업이 발달하지 않은 사회였으므로)

당시의 주요 생산품은 식물이었고, 가축이었다. 공업 제품들은 스스로 만들어쓰는 가내공업 형태로 생산되었고 이는 판매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급 자족을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가내공업 제품이 그들의 부의 원천이 아니었다. 당시 사회는 상업 사회가 아니었고 자급 자족 사회였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급 자족 사회를 염두에 두시고 경제법을 만들어주셨다. 그러므로 오늘날과는 다른 형태였고, 오늘날에는 그 원칙만이 추출되어 적용되어져야 한다.

자급 자족 사회에서는 한 가족이 확대할 수 있는 최대 부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아브라함도 부자였다. 야곱도 부자였다. 욥도 부자였다. 그러나 그들에겐 이스라엘의 경제법이 적용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마치 야곱에게 율법이 적용되지 않듯이. 야곱은 율법에서 금한 결혼을 했다. 율법에선 자매를 동시에 아내로 취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가축의 숫자가 느는 것을 살펴보자. 가축 수가 무한정 늘어날 수 있는가? 사료의 양이 그것을 따라가주어야 하고, 또 방목장의 크기가 따라 주어야 한다. 이것을 넘어서 가축수가 무한정 늘어날 수는 없다.

또 그것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한데 한 가족이 스스로 할 수밖에 없으므로 기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즉 자동화 관리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 한 목자 당 관리 가축의 수는 한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부의 절대적 축적은 불가하며, 이스라엘 내 여러 가족들간의 빈부격차의 폭은 항상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노예수를 늘린다 하여도 토지가 한정되기 때문에 무한정 확대가 불가하다.

즉 하나님의 경제법은 이런 현실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따라서 면제년법, 안식년법, 노예해방법, 희년법 등이 적용되면 매 50년이 되어선 각 가족들간의 경제력 차이가 거의 미미한 수준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 자세한 통계적 예시는 위의 사항들을 가지고 적정한 숫자를 대입하여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될 것이다.

요즘과 달리 노동은 팔릴 수 없었다. 외국에서 잡혀온 노예는 극히 적은 수였다. 국내의 노예도 잠시만 그렇게 사용될 뿐이었다. 7년마다의 동족 노예의 해방, 어떤 점에서 요즘의 임금노동자(자기의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하고 오로지 몸밖에 없는 사람)가 영구히 생겨나는 것을 막는 제도였다.

경제는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스라엘엔 왕이 허락되지 않았다. 일종의 민주제였다. 하나님만이 왕이시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평등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도 평등했고, 정치적으로도 평등했다.

경제적 평등 사회는 경쟁이 제한적이다. 노동의 적정 수준에서 끝난다.(비록 노동 그 자체가 땀을 흘려야 하는 저주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모든 경제 활동의 이유는 생활 수단을 얻기 위한 것에 불과하며 생산 수단을 얻기 위한 것은 아니다. 설령 생산 수단의 토대를 잃어버렸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다시 자기나 그 후손에게 돌아온다.

땅은 생산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경제 주체들의 노동은 마치 미국의 서부 이민자들 사이에서처럼 임금 노동자가 없는 사회를 만들어냈다. 각자가 자기가 일굴 수 있는 양만큼의 땅을 가지고 생활 수단을 만들어내니 다른 사람의 임금 노동자가 되어줄 이유가 없었다. (식민지에서의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을 원한 웨이크필드의 고민은 여기에서 생겨났다고 막스는 말한다.)

그런데 그들은 왕을 원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변화가 이루어진다.

이스라엘엔 예비군만이 있었고 현역이 없었다. 즉 각자가 자기 농토에서 생활하다가 전쟁이 나면 소집되는 형태였다. 그러므로 군인들에게 지급될 임금을 거둘 이유가 없었다.

이스라엘은 오로지 십일조를 거두어 레위인들을 보살피면 되었고 경제 활동 과정에서 생겨날 수 밖에 없는(질병과 하나님의 재앙 등으로)가난한 자들에게 쓸 재원을 마련해주면 되었다.

요즘의 조세율이 선진국에선 40%대에 육박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과도한 조세가 생겨났는가 알 수 있다.

그런데 왕이 생김으로써 경제 제도도 달라졌다. 왕은 현역의 군사력을 필요로 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아셨다. 왕이 경제 구조를 파괴하고 인력 구조를 파괴할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하나님은 왕을 세우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죽을 길을 택했다.

왕은 이러한 자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경제적 토대를 마련해야 했다. 그것은 조세를 통해서도 이루어졌고, 토지 몰수를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왕은 부자가 되기 시작했다. 왕 주변에는 여러 대신들이 생겨났고 이들도 왕을 따라 이런 짓을 하기 시작했다. 자기 노동에 의해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이제 타인의 노동에 의해 살아가는 구조가 되었다.

하나님은 노동의 평등을 원하셨다. 정치 제도가 경제 제도를 바꾼 것이다.

토지를 떠난 병사들은 임금 노동자가 되었고 그들의 토지는 타인에게 팔려갔다. 왕은 전쟁을 위해 더많은 조세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더많은 병사를 고용하고 더좋은 무기와 말들을 마련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산업이 필요하다. 즉 자급 자족적 산업이 아니라 이윤을 남기는 산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왕은 산업을 장려한다. 그런데 산업이 커지기 위해선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 그래서 토지 집중이 이루어져야 하고, 다수의 사람들이 동일한 장소에서 노동하는 공업화가 필요하다.

전쟁 무기도 그렇게 생산되어야 했고, 궁전에서 필요한 물품도 그렇게 만들어져야 했다.

이제 판매를 위한 물품 생산 전담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군인들이 스스로 물건을 만들 시간도 없었고 대신들이 이 일을 할 수도 없었고 궁전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시간을 빼앗겨서도 안되었다. 왕을 즐겁게 해주어야 할 사람들이 이 일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불충이었다. 그런 일은 평민들이나 해야 할 일이었다.

이제 백성들간의 위계가 생겨났다. 귀족과 평민. 놀며 누리는 자는 더 많은 것을 원했다. 빈부 격차를 만들어내는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희년도 깨지고 노예 해방법도 사라졌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경고하셨다. 하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고 그들은 2천년을 유리하는 백성이 되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이스라엘의 경제적 자유, 정치적 자유를 회복시켜야 한다.

그 구체적 방법은?

하나님의 역사는 놀라우시다.

죄가 더한 그곳에서 은혜가 더하신다.

왕을 만들어낸 인간 세계(이미 이스라엘 주변에는 이런 나라들이 많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들을 본받지 말라고 하셨다.)는 필연적으로 불평등 구조가 심화될 수밖에 없고 이 불평등 구조는 언제나 사회 불안을 야기하며(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으므로 이것을 견딜 수 없어 결국은 소동이 일어나기 때문에) 결국은 망해간다.

이스라엘도 그 길을 따라갔다가 망했다.

하나님은 새로운 정치 경제 구성체를 원하신다.

하나님만 왕이시고 만인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모두 평등한 구조.

타락한 인간 세계에서 만들어진 군주제가 드디어 민주제로 바뀐다. 군주제는 민주제를 배태하고 있었다.(하나님의 피조물들은 군주제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브르주아들은 민주제를 만들어냈다. 왕과 귀족이 아니었지만 이들에게 물품을 공급해주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과정을 통해 이윤을 확보하고(하나님의 복으로도, 노동 착취로도, 사기로도, 매점매석으로도) 경제적으로 힘을 갖추게 된 이들은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자기들보다 자본도 적게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더이상 순종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경제 민주화는 원하지 않는다. 자기들에게 권력까지 가져다 준 경제적 토대를 똑같이 한 표로 나눈다는 것은 왕이 그 권력을 국민(브르주아)과 함께 나눈다고 생각할 때보다 더큰 자괴감을 주기 때문이며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그것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무엇을 빼앗아가는 지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왕은 그가 국가 권력에 기여한 것 이상으로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

자본가는 그가 자본 확대에 기여한 것 이상으로 모든 부를 장악했다.

이것들이 죄악이다.

이제 국가 권력은 모두에게 다시 나누어졌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재분배된다.(아직도 완전한 형태는 아니며 자본이 여기에 밀접하게 관여하고 있지만, 그래도 초기 민주제에 비해선 일반민들의 정치 의식이 향상되어 때로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이제 경제력이 모두에게 다시 나누어져야 한다. 그리고 위임되고 재분배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모든 가족들의 경제력이 대동소이했으므로 이제 50년에 한번씩은 모든 국가 구성원들의 경제력을 재분배해야 하며, 7년에 한번씩은 임금노동자로부터 해방시키는 역사가 있어야 한다.(그런데 이 방법은 무엇일까?)

50년에 한번씩 국부를 모두 재분배해야 한다.





2002-03-24 11: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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