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종
  로크가 놓친 것과 아리랑당이 가야 할 길 - 부의 장주기적 재분배
  

로크는 각 개인의 생명과 자산과 자유의, 하나님 앞에서의 평등을 이야기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기틀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론이 또다른 불평등주의자들인 부르주아들에 의하여 이용될 수 있는 허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 최대 집단인 미국이 지금 그의 이론을 통해 어떤 짓을 하고 있는가를 보면 잘 드러난다.

지금 정치적 자유는 만인에게 모두 평등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민주주의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실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적 기본질서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왕권 신수설에 입각한 군주제가 무한정한 권력 행사를 통해 각 개인들의 생명과 자산과 자유를 제한했다면 이제는 자유주의에 입각한 부르주아들, 자본가들이 무한정한 경제력 행사를 통해 정치 권력을 역으로 제어하면서 각 개인들의 생명과 자산과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막스 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는 5년마다 대통령 선거를 치르며, 4년마다 국회의원 선거를 치른다. 즉 권력의 독점이나 후대에의 세습을 용인하지 않고 형식적으로는 누구나 공무 담임권, 참정권을 가질 수 있는 형태를 띄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요체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주의는 권력의 문제에서만 이렇게 해선 완성될 수 없다.

왜 권력은 세습해서 안된다고 하면서 부는 세습하려는가? 정치 권력의 형성과정과 국부의 형성 과정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가?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암묵적으로 이 차이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가 권력의 형성 과정이나 유지, 확대 과정과 국부의 형성, 유지 확대 과정에는 유사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일부 인식하고 부의 세습을 막기 위해 상속세나 증여세를 두고 있지만, 이도 유한하다.

5년마다 정치 권력에 대해 다시 전국민을 상대로 재분배를 실시하는 것처럼, 경제적 부에 대해서도 주기적으로 재분배를 실시해야 한다. 여기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국부의 증대, 또는 개인적 부의 증대의 형성 과정과 원인에 대한 엄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

막스는 노동자에 의해 국부가 형성되어진다고 보았다. 막스 베버는 자본가의 열심에 의해 형성되어진다고 보았다.

현대에선 소비자가 국부의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국부는 노동자나, 자본가나, 소비자 중 어느 일방에 의해 형성, 유지, 확대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기여에 의해 확대되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자본가의 자본 축적을 아주 짧은 단위로 재분배한다면 경영 효율이 떨어질 수 있고, 이런 열심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인생의 수명과 관련한 주기에 가깝게 재분배하는 방식이 보다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자기 인생 동안에 최대한 열심히 일하고 축적하고 경영하여 개인적 부나 국부의 확대에 기여하고 이 땅을 떠나갈 때는 이를 자기 자녀가 아니라 국가 전체, 국민 전체에 반납하고 가야 한다.

이렇게 될 때, 그 자본가의 자녀의 도덕적 해이도 막을 수 있고, 또 새로이 태어나는 세대들이 다시 요단강을 넘어간 것처럼 동등한 조건에서 노력할 수 있는 기반이 생겨난다.

이럴 때 국가 전체적으로는 공정한 경쟁심이 유발되어 게으른 자나, 절망하는 자나, 타락하는 자가 없이 모두다 다시 한번 최선을 다해 자기 삶을 경주할 수 있게 된다.

아버지가 올림픽에 출전한 백미터 선수이고 그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그 자녀를 다시 공정한 경쟁도 시키지 않고 대회 대표 선수로 출전시키는 일은 그 나라의 육상 실력을 가로막는 행위이다.

이것이 부의 세습에서 이루어지는 문제점이다.

성경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말씀한다. 그리고 희년법을 통해 50년마다 전체 국부를 재분배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 점은 국가 권력이 한 사람 대통령에 의해 유지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선거 방식이 경제적 부의 재분배에도 적용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즉 정치에 있어서 국가 권력의 동등한 주주로서 온 국민이 다시 한 표씩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듯이, 경제에 있어서도 국부의 동등한 주주인 온 국민에게 다시 국부를 동등 재분배하는 일이 長주기적으로 반복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온 국민이 국가 권력의 유지를 위해 노력해서 국가가 유지되는 것처럼, 국부도 자본가나 노동자 등 특정한 사람들만이 노력해서 형성되고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이 생산자로서, 자본가로서, 또는 소비자로서 기여하여 확대되고 유지되고 있음으로 어느 시기에 가서는 다시 동등하게 재분배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주의와 다른 방법이다.

사회주의는 短주기적, 항시적으로 재분배하여 경영 효율을 떨어뜨리고, 게으른 자들이 무임승차하는 것을 방임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따라서 마치 아이들에게 저금통을 하나 주고서 거기에서 끊임없이 하루에 동등한 액수의 용돈을 가져가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용돈을 제대로 쓰려는 아이들이 많아지기 보다는 도덕적 해이가 아이들 사이에 충만하여져서 제대로 효과적으로 쓰여지지 않게 된다고 본다.

자본주의는 한번 용돈을 나누어준 후에는 다시는 관여하지 않는 방식이다.

따라서 가장 바람직한 방식은 단기적으로 나누어주거나, 영원히 나누어주거나 하는 방식이 아니라, 장주기적으로 다시 재분배하는 방식이다.

이는 이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 보여주신 제도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처럼 이야기한 막스베버나 많은 부르주아 이론가들이 이런 제도를 무시했다.

마르크스도 성경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식으로 경제적 정의를 세우지 않아 큰 혼란이 일어났다.

부의 재분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기의 적정성이다. 이는 수명과 관련해서 고려되어야 하며, 또 인생의 생존 조건과 관련지어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한 끼를 먹지 않아도 움직이기가 힘이 든다. 또 길어야 7-80년을 이 땅에서 살다 간다. 그리고 보통 30세 정도에 자녀를 낳아 기른다. 이런 생존 주기가 부의 재분배와 관련하여 고려되어야 한다.

성경의 십일조는 이런 점에서 유용한 방식이다. 이 십일조를 통해 가난한 자들, 즉 경쟁에서의 패배자들, 낙오자들을 보호했다. 그리고 그 패배자들의 2-3대 후손들은 다시 공정한 재분배를 받아 새로운 경쟁 대열에 뛰어들게 해주었다.

즉 공정 경쟁에서의 패배자는 패배의 결과를 자기 인생 동안 맛보게 됨으로 도덕적 해이가 생겨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기본적 생존에 필요한 요소들은 제공되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사회적으로 공급받을 권리가 주어졌다.

경쟁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경쟁이 공정한 경쟁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패배자를 보호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인류 사회는 파괴된다.

그러나 지금은 공정 경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출발 조건이 다른데 어떻게 공정 경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패배를 인정하라는 말인가?

게다가 이 불공정 경쟁에서 패배한 패배자가 설 곳, 생존 조건이 거의 박탈되는 상황이라면 이 패배자들은 완전한 절망에 빠져, 살인 등의 무자비한 짓도 저지르게 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의 암흑이다.

이에 우리 당은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부의 장주기적 공평 재분배를 주요 정책으로 삼고자 한다.

2002-06-18 10:3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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