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첫째, 神歌(지금 우리 식으로 하자면 복음송입니다. 마치 흑인들의 영가 식입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 국가가 아니지만, 애국가에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고래로 하느님을 섬겨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가 알지 못하고 부르던 신"이 바로 우리가 전하는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라고 전했습니다. 한민족이 정확히 알지 못하고 부르던 "하느님"이 바로 우리의 "예수님"이심을 우리는 전하고자 합니다.

이 민족은 아리랑을 통해 이렇게 하느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는 이 민족이 알지 못하고 불렀던 "하느님"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아리랑 당"은 이니셜만이 아니라 표면적 의미로도 적절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노동요 (특히 강원도 등에서는 산악요이기도 합니다. 산을 타고 다니며 살아가던 화전민들의 애환을 담고 있습니다.)

아담에게 주셨던 "노동"의 명령을 수행하는 노래입니다. 아담은 타락하여 이 일에서 실패했고 "저주받은 노동" 아래 신음하게 되었습니다. 자본주의는 이 저주에 천민주의적 자본가들의 "노동 착취"라는 악행을 더하여 이 세상을 더욱더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제 "본원적 노동", "창조적 노동", "축복의 노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노동을 온 세계에 확대해야 할 소명이 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염려하는 노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는 아름다운 노동입니다. 우리 당은 이런 "아름다운 노동",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실천하는 "노동의 정당"입니다. 이런 점에서도 "아리랑 당"이라는 명칭은 적절하다고 봅니다.


셋째, 민요 (서민들의 여러 개인적, 민족적 애환을 담고 있습니다.)

원산 아리랑의 "신고산이 우르르르 함흥차 떠나는 ----"에는 가난한 모녀가 가난에 시달리다 고리 대금업자에게 그 딸이 팔리는 일이 벌어지는 과정에 그곳을 떠나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게 되는 안타까운 사연이 노래되어 있습니다.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내 백성의 가련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너희에게 벌하시는 날에와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죽임을 당한 자의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이사야서 10장 1-4)

경제적 약자, 사회적 약자들은 오늘날도 계속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당이 바로 이러한 약자 분들의 천부적 권리를 보호하려는 정당이 되려고 한다는 점에서 아주 유효한 당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본 사무엘하 23장의 말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바위가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에 나오는 정치인들의 무리를 부르기에 어울리는 당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당이 이 일을 충실히 수행했을 때 우리는 윗 말씀에 바로 이어주신 하나님의 말씀인 '저는 돋는 해 아침 빛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의 복이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하나님 경외 정치, 위민 공의 정치를 이 땅 가운데 실현하려는 정당으로서 서민들, 약자들의 노래 제목이 이니셜의 합성어 외로도 이중적인 의미에서 표면적 당명으로 사용된다는 것은 적당하다고 봅니다.


광복군들이 지어부른 아리랑은 민족 독립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우리 나라는 아직도 완전한 독립 국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군 작전권의 문제에서 여실히 드러나며, 또 각종 주요 국가 사안에서 미국이나, 주변 강대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나라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가 광복군이 점령군으로서 이 땅에 들어오지 못한 역사도 있습니다. 즉 광복군의 "광복 아리랑"은 아직 미완의 노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의 진정한 자주 독립을 이루어내는 정당이 되고자 합니다. 이 점에서 광복군의 정신을 이어받습니다. 이런 관점에서도 당명으로 "아리랑 당"은 유효하다고 봅니다.

한 때 이 나라의 통일 국호를 "아리랑"으로 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해외로 쫓겨난 수많은 동포들이 지금도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다.

"아리랑"은 이들의 노래입니다.

탈북자들은 중국에서 크나큰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 일에서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 당은 600만 재외 동포의 한을 풀어주는 당이 되고자 합니다. 특히 중국, 일본, 남미 등지의 동포들의 한을 풀어주는 당이 되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유수 등으로 고통을 겪은 이유는 민족적 불의함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민족도 마찬가지의 역사적 경험이 있고, 아직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서 29장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해외 600만 동포의 한이 풀리는 것은 우리 민족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 밖에 없습니다.

우리 당은 이들의 한의 노래를 앞세우고 이 일을 이루어내고자 합니다.

신명기 28장 1-7절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는지 하나님이 말씀해주십니다. 이는 단순히 이스라엘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민족에게 공통되는 원칙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ㅇ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 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우리 당은 이 민족을 세계 만민 위에 우뚝 세우기를 원합니다. 그간의 모든 한을 풀어내고 하나님을 섬김으로 세계 만민 위에 자랑스런 민족으로 세우고자 합니다.

이 민족이 조선 말의 타락으로 돌아가 일제 시대의 저주를 다시 받지 않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는 신명기 28장의 다음 말씀으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14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16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17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18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19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20 ○네가 악을 행하여 1)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혼란과 책망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하게 하실 것이며
21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마침내 너를 멸하실 것이며
22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하게 할 것이라"

이스라엘이 이런 저주를 받은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일"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지 않은 일" 때문이었습니다.

"아리랑" 노래는 각 지역마다 있습니다. 가사도 곡도 다른 노래이지만 그러면서도 "아리랑"이라는 명칭으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이 나라엔 지역간, 계층간, 계급간, 성별간 많은 갈등이 잔재해 있습니다. 우리 당은 통합의 정치를 이루어내고자 합니다.

"아리랑"의 통일 정신을 이어받아 이러한 통합 정치, 조화 정치를 하나님 안에서 실현하고자 합니다. "아리랑"은 미완성의 노래이며 계속 만들어지는 노래입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맞는 "아리랑"을 부를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으로서의 "아리랑", 세계적 지도국가로서의 "아리랑"을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